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경영수필, 와타나베 이타루) 독서

세상의 모든 것은 부패하고 균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돈은 다르다.
돈만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놔두면 놔둘수록 증식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

이미 자본주의의 시대는 끝났고, 천민주의의 시대가 오고 있다.
"돈이면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만한 것이 없더라." 라는 말처럼,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지만, 반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찾을 수도 없는 시대.
이런 시대가 도래한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은 끊임없이 꼬리를 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보다 훨씬 이상적인 사회 체제를 찾을 수도 없는 이 현실.
이 책은 이 '부패하지 않는 자본'이 일으키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새로운 방식의 빵집을 운영하는 시골 빵집 주인의 
경영 이념과 철학, 나아가서 사회의 경제 순환 구조에 대한 고찰까지 담겨있는 책이다. 

"돈 내고 돈 먹기"라는 말은 이미 창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선 널리 퍼진 말이다.
막대한 자본금을 투자한 사업은 투자금에 비례해 큰 수익을 안겨준다고 해서 생긴 말인데,
결국 돈 많은 사람들과 소상공인들은 시작부터 불공평한 싸움을 하게 된다는 의미로 퍼졌다.
실제로 한국에선,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서 사라지는 소상공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통구조부터 전혀 달라서 싸움조차 할 수 없는 이것이 정말 공정한 경쟁 상황일까.
자본주의는 이렇게 불공정한 경쟁 사회를 만들고, 그 경쟁 사회를 통해 독점을 합리화시킨다.
소모하면 소모한 만큼 사라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자연의 섭리인데,
유일하게 소모한 만큼 더욱 증식하니, 돈의 존재는 자연의 섭리에 반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농수산물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건강과 생활까지 뒤흔든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그 불편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빵을 만드는 길을 택한다.

빵을 만들면서 저자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부패 현상'이었다.
음식은 놔두면 자연적으로 발효와 부패의 두 가지의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저자는 이 자연의 섭리를 이용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바르고 건강한 빵'을 고안해낸다.
이후의 이야기는 저자가 바른 빵집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이다.

자본주의가 이미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리잡았고, 
그 환경에서 자란 우리 세대는 이제 욕심 없이는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다.
꿈은 욕심을 채우는 것의 수단이 됐고 그것이 채워져야 성공한 삶이라고 배웠다.
그런 우리 세대가 부끄러울 정도로 저자는 욕심 없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이윤에는 큰 관심이 없다. 큰 돈을 벌어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며 명품 옷을 입어야겠다는 욕심이 없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정상적인 이치로 순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올바른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 하나로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재력으로)성공한 사업가보다 멋지게 다가온다. 

자본주의에 굴복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노동자를 혹사시키고,
안좋은 이야기만 쏙 빼서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성공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경영수필에 비하면
이 책의 성공 사례는 한없이 초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금주의가 만연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책은 몇 달 동안 베스트 셀러에 오른 책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단순한 성공이 담긴 경영 수필 그 이상의 숨겨진 저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욕심을 채우는 것 보다, 자본주의에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꿰뚫어보고, 그것의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방을 만든 저자.
이 하나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지금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빛난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 안국진) 영화

"9년째 되던 해에 은행에서 돈을 빌렸어요.
저는 꾸준히 노력을 하는데, 집값도 꾸준히 오르더라구요."
이 대사 하나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현실,
그것을 잔혹하게 그린 영화

포스트 박찬욱.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안 감독에 대해 붙은 수식어.
박찬욱 감독도 대본을 읽고 극찬을 했다고 하는 영화. 
긴 예고편보다 이 꼬리표만으로 나의 기대감을 부풀어오르게 한 영화.
영화는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줬다.
"괜히 '포스트 박찬욱'이라고 불리는게 아니구나" 싶을 만큼,
박찬욱표 블랙 코미디와 씁쓸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던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영화를 같이 본 사람들은 "영화가 너무 비현실적이다", "현실성이 없는 고어씬이다"라고 혹평을 했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부분이 내겐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눈물 날 정도로 성실했던 한 여자가 결국 실성하게 되는 모습이 
밑바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밟힐 수 밖에 없는 이 현실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려낸 것 같아서 현실감과 씁쓸함이 두 배가 됐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필요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성실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부를 거머쥔 사람들 이야기를 쉽게 접한다.
그리고 성실하지만 운이 나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회를 성실함과 노력에 의해 성공이 결정되는 사회라고 부를 수 없지 않나.

그 질문의 답은 주인공 '수남'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 했던 예비 엘리트였던 그녀.
격동하는 시대 속에서 컴퓨터에 밀려 불필요한 인력으로 밀리게 되고,
다양한 일을 전전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던 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이런 삶을 감히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작품 속 희생자도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들 역시 감히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피지배층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지배자들과
그 밑에서 서로 갈등을 맺는 피지배자들.
정작 죽어야 할 공무원들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아래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끝난다.
이 모든 것을 짧은 러닝타임에 담아낸 탄탄한 구성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영화가 신인 감독의 작품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신인 감독의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은 건 "불신지옥" 이후 처음이다.
패기 넘치는 데뷔작을 선보인 안국진 감독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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